자작나무/자작소설

추억의 글

나고목 2018. 8. 18. 19:17

며칠 전, 대구에도 첫눈이 하얗게 내렸지요. 첫눈이 내리면 첫사랑이 생각난다는데

'우리 님은 어느 하늘 아래서 함께 늙어가는 그리운 이가 생각나던가요? '

'아니라고요?'

배우자가 들으면 매우 흡족해하시겠군요. ㅎㅎㅎ

저는 그리운 이가 생각나서 첫눈을 무참히 밟고 다녔답니다.

'왜 아까운 첫눈을 밟았느냐고요?'

마누라가 보기 전에 밟아 버려야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잖아요. ㅎㅎㅎ

첫사랑의 순수함처럼 첫눈의 설렘은 나이가 들어감에도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순수하게 하는 마술이 있죠.

 

봄볕 따스하게 불어오던 지난 봄이었지요. 서로 전혀 다른 길에서 '배움'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의 인연은 첫눈의 설렘처럼 그렇게 시작되었고, 우리는 만학도의 열정으로 배움에 임했지요. 그러나 ***의 특성상 함께하는 시간이 별로 없는 관계로, 그 봄날의 만남은 서로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모른 채 1학기를 보냈지요. 그리고는 가을 귀뚜라미 울음에 깨어난 외로운 베짱이처럼 허겁지겁 기말시험을 치르고는 2학년으로 올라가려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따스한 체온이 있는 것이죠. 그 체온을 나누지 못하는 '베짱이와 개미'라는 우화 속의 베짱이도 개미처럼 서로 의지하며 고통을 나누었더라면 하는 생각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 이야기는 아닐까요?' 

물론, 중도 포기하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학우들도 있지만 계절을 한 바퀴 돌아 1학년을 무사히 마쳤으니 남은 3년도 잘 견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전공과목의 교수님들과 유대를 강화해야만 전공에 대한 이해와 깊이있는 공부가 가능하며, 학우들 간 돈독한 유대는 스타디, 과제물 준비, 졸업논문 제출 등을 보다 쉽게하는 지름길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유기적인 관계는 국문과 특성상 문단에 등단한 시인, 수필가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작가를 자신의 친구로 만들기도 하며 자신 또한 글을 통해 그들의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늦은 나이에 이렇게 배우는 행복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미 대단한 끼를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단지 그 끼를 발휘하지 않을 따름이겠지요.

 

우리가 불혹을 넘긴 나이라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작듯이, 우리에게도 많은 시간이 기다려 주지는 않죠. 어쩌면 이번의 발버둥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군요.

다행히 많은 학우의 우려와 관심으로 단합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 이렇게나마 졸필의 글을 조심스레 올려 봅니다.

 

                                                                                         2008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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