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사랑
겨울비가 내리는 날였다
눈이 되어 내리지 못한 겨울비는
설화만발했던 옛 추억마저 하나 둘
빗물로 지워 버린다
겨울창으로 흐르는 빗물에게
목만은 독백처럼 물었다
' 나에게 남은 것이 뭔가? '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라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인생사 허무할 따름였다
뉴욕행 비행기는 이륙과 동시에 이내
밤야경마저 삼킨 채 둔탁한 엔진음만 들려온다
춘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만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 가슴 아파왔다
사랑에도 격식이 있어야 하고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면 로맨틱한
사랑이라도 이렇게 떠나야 한다는 세상논리가
싫었고 자신도 그 범주를 탈피할 수 없는
현실의 한 인간이기에 싫었다
목만이 보낸 마지막 문자를 열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아려오는 가슴 한컷에는
자존심마저
버린 채
갈망하는 바람이 있었지 ㆍㆍ ㆍ
무릇
시간이 지나면
잊히듯
세월이 약이라고들 말하지만
늙어가는 만큼이나
허무한 것을
어찌하겠는가만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어찌 하늘을 거역하리오
허나
허무한 맘
한 구석이라도
같은 심정였다면
그건 결코
서로를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뼈마디마디를
무딘 칼로 도려낼 따름인 거지
누누이
추한 모습 싫다며
쿨한 헤어짐이
서로의 행복이라고
겹겹 되뇌어도
결국은
허공을 향한
부질없는 외침을 뿐인 거고
추억을 곱씹어보면
지난 숫한 나날이
하나 둘
아련 거리는 만큼
세월에 늙어갈 뿐이니
추억은 색을바래 지워지고
애달프음은
겨울낙수처럼
흐르다 묻히는 거지
가고 없음에
멍한 하루가 가면
붉그레 석양이 지고
이내 어둠은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할 테고
세속은
휘영찬 야경으로 채워져
누구 하나쯤 곡소리는
째깍째깍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일 뿐
그 누구도 아는 이 없겠지
그러나
우리는
그날 이후
페가수소로 향해는
꿈속의 영혼이 되어
잠꼬대처럼 되뇌겠지
우리
다시 태어나면
망개처럼
깨지는 그런 사랑 말고
봄 새싹처럼
깨지지 않을
연둣빛 사랑을 하게 되나요
그리움만큼 보곺고
보고픔만 그리운 그런 사랑을ㆍㆍㆍ
춘희는
눈물로 문자를 지우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 그래요. 망개처럼 깨지지 않는 연둣빛 사랑을...'
' 그리움만큼 보곺고 보고픔만큼 그리운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