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자작소설

징소리1

나고목 2014. 11. 14. 13:11

징소리 1

                                                                                     나고목

 

갯가의 버들이 은빛으로 빛날쯤

봄볕이 따스하게 대보뚝(堤防)으로 내리앉아
보라빛 제비꽃을 꽃피웠다
남풍이라지만
베적삼으로 스미는 바람은

아직도 아랫도리를 움추리게하고
닭살이 돋아난 거머팅팅한 살갖엔

추위로 인한 미세한 떨림이 찾아온다
겨우내 언 물논의 벼밑둥은 그날 따라 하늘의 눈구름 때문여선인지
작년에 타작(打作)한 뒤로 빛바랜 회색이 더더욱 초라하다

 

마지막 눈인지
복사꽃 봉우리가 벌써 두툼하기 시작했는데도
하늘에는 온통 쌓이지 않을 눈이 억수같이 쏟아졌다
마치 닭장 속의 흰닭들이 교미끼에 난리를 쳐
닭장이 온통 하얀 깃털이 나부끼는 마냥~~

 

재너머로는 저녁뗄감으로 벼짚을 태워선지
초가지붕의 굴뚝에서 내려앉은 하얀 연기가 눈발에 스며
부락(部落)이 온통 희미했다
그러선지 처음 찾는 행인(行人)은

이곳이 마을인지도 모른채 지나갈 판이다
다행히 당산나무에 떼지어앉은 까마귀떼의

혐오스런 울음소리를듣곤
과부인 기장댁이 있는 객주(客酒)를 찾아 
도야지국밥에다가 막걸리 사바리(사발)를 드리키며

마지막 추위를 누거려 본다
뿐만 아니다 오늘같이 눈발이 모질게도 휘날리는 날씨엔
부객(浮客)이라도 매상을 조금만 올려주면
니나노판에다가 늙은 과부를 품는 행운도 있을 법하다

 

그날밤였다
자정이 막 지날찰라
고요를 깨는 급박한 징(鉦 )소리가 울려펴졌다
대낮도 아니고 야심한 밤에 징소리가 울리다니
이는 십중팔구 부락에 큰 재앙이 닥쳤거나 닥치고 있음을 암시했다
부락이 생긴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자정이 지난 심야에 징소리가 울리는 경우는

10년에 서너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평소에는 밤에 징을 치는 법은 없다
몇해 전에 술을 마신 머슴 한놈이 한밤중에 징을 치며 지랄을 하다가
가마니말이를 당해 초죽음이 된 적도 있었다
대낮에는 한달에 서너 번 징소리가 울렸다
그윽한 징소리가  부락에 울려펴지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끝내고선 당산나무로 가거나

이웃에게로 가서 귀동냥을 하면 그만이다
산중(山中)에 위치한 촌락(村落)들이 뛰염뛰염 자리하고있어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기에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징소리를 신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였다

 

쌓이지 않을 눈발이 그친 밤
총총한 별들이 가득한 하늘이 나타났다
하늘과 맞닿은 산자락 아래로는 온통 어둠으로
산자락 중간중간의 초가집은 커녕

누렁이를 매어둔 헛간조차 보이질 않은 칠흑였다
댓살로 듬성듬성 만든 외여닫이문 뒤로

호롱불이 하나 둘 밝혀지고는
피로에 지쳐 곯아떨어졌다가 징소리에 막 깨어난 사람들이
주섬주섬 허리춤을 메고는

삽살개가 요란하게 짓는 어두운 밤길을 나선다
까만 어둠의 부락에는

횃불의 움직임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긴 꼬리를 만들며
성황당(城隍堂)을 지나 객주(客酒) 인근의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들었다
아직도 잠에 취했는지

가자미 같은 실눈으로 이장(里長)인 엄동치(嚴東致)의 입을 쳐다보는

백씨(白氏)는 고개를 까우둥거리다가 이장 옆에 흐릿하게 보이는
가마니로 삐져나온 송장 다리를 보곤 기겁을 했다

'자작나무 > 자작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정산 후기  (0) 2017.07.18
굼뱅이 요법  (0) 2017.07.18
신지란지교  (0) 2014.01.05
제문  (0) 2014.01.05
꼬장산  (0) 2014.01.05